|
2009년 07월 17일
바람, 추적, 로리. 점점 쓸데없이 길어지고 이래저래 잘 안써져서 일단 짤라서, 절반. 나머지는 나중에. "후우.." 오늘 들어 몇 번째 인지 모를 한숨을 푹 내쉬면서 허벅지를 짝 소리나게 내려쳤다. 잠시 날카로운 통증이 스쳐 지나간 후 약간은 기분좋은 얼얼함이 다리로 퍼져 나갔다. 손을 땐 허벅지에는 '혈액 대 방출' 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피로 범벅이 되어 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아마 다리 전체. 아니, 어쩌면 옷 밖으로 드러난 피부의 대부분이 이런 꼴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손바닥에 납작하게 달라 붙어 죽어있는 42마리째의 ( 아니.. 43마리 째 였던가? ) 모기를 털어내며 나는 다시금 한숨을 쉬었다. '밤의 산을 얕보지 마라' 낡은 격언을 다시금 되새기며 몸에 뒤집어 쓰고 있던 모포를 추스렸다. 설마 그 말에 굶주린 아귀같은 모기에 대한 경고도 포함되어 있을줄은 몰랐지만. 물론 생각없이 대뜸 산에 처박힌 것은 아니다. 뭐랄까, 작지만 배낭안에 깔개라던가, 모포라던가, 과자나 음료수 등등, 나름 제법 준비를 철저히 했다... 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고작 얇은 모포 한 장 만으로는 어둑한 산의 한기, 그리고 사자 우리에 던져넣어진 양을 본 굶주린 사자마냥 달려드는 모기를 막기엔 턱 없이 부족했고, 나는 옻나무 과수원에 뛰어 든 알레르기 환자에, 중풍이 발동 걸리기 시작한 노인을 더해 놓은 것 같은 굉장한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여기서 더 최악인 것은 얼마전 부터 점차 거세지는 바람이 나뭇잎을 거세게 들글고 있다는 것. 그리고, 희미하지만 그 속에 느껴지는 약간은 비릿한 물 내음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아침에 통학 버스 안에서 얼핏 들은 일기 예보에서 분명 강수확률 80%, 저녁쯤엔 수도권 지역에 소나기가 어쩌고 저쩌고 했었던 것 같은데. 아아 제기! 비가 오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단 말이다. 특히, 산 속에서 처량하게 모포 한 장만 두른 채 벌벌 떨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선 더욱 더! 난 노숙자가 아니란 말이다! 애시당초 내가 왜 이런 곳에서 모포 한 장과 함께 모기와 싸우며, 앞으로 내릴지도 모를 비 걱정을 해야 하는 거지? 라는 당연한 의문을 머리속에 떠 올린 채 분개할 수 있는 평범한 학생이란 말이야! 더불어 나이는 17, xx남고에 재학중이며 여자친구 절찬리 모집 중.. 아, 이런 건 아무래도 좋나.. 내 처지가 어쩌다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나, 돌이켜 보자니, 스스로도 당황스럽게도 라면 때문이었다. 어, 그러니까 학교에서 돌아 온 후 출출해져서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그런 일은 누구라도 한 번 쯤은.. 아니, 정확히 꽤나 자주 경험하는 평범한 일 일 것이다. 허나, 젓가락을 들고 행복하게 라면을 먹기 시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건, 바로 집에 '매우 훌륭한 인격' 의 소유자이신 누님이 있었다는 것. 막 잠에서 깨어난 듯 부스스한 차림새로 거실로 나오던 누님은 막 입에 라면을 넣고 있던 나를 발견했고, '어이쿠, 동생님아. 네 누이는 뼈 빠지게 일 하다가 지쳐 골아 떨어져있는데 혼자 라면이 입에 처 들어가세요?' 라고, 다짜고짜 (속된말로) 갈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신세 한탄.. 대충 '아, 저 X놈의 쉐키는 누님, 피로하실테지만 잠시 일어나서 어여쁜 동생이 끓여 준 라면이라도 드시고 주무시지요 출출하지 아니하신가요, 자 누님의 취향에 맞게 계란도 풀었답니다.. 는 식으로 하지는 못할 망정 도둑굉이처럼 지 혼자 처먹겠다고 살금대면서 돌아다니누 누구 등골을 빼 처먹고 사는지 알고는 있는건지-' 라는 느낌이었던 것 같다. 그런 갈굼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라면을 먹으려 하였지만 누님의 갈굼을 끝을 모르고 이어졌고, 먹은 라면 면발이 역류할 지경이 되어 누님의 라면을 끓이는 신세가 되었었다. "자, 먹어. 저녁밥." "저녁이냐? 이게? 그냥 라면이잖아?" 누님은 대단히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젓가락으로 면을 쿡쿡 찌르며 퉁명스럽게 말 했다. 취향에 맞게 계란이 어쩌고 하기에 라면이 먹고 싶었던건가, 생각했지만 또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 야, 너 상식적으로 넌 자다 일어난 사람한테 라면을 먹으라고 주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생각이 있냐 없냐? 생각좀 하고 살라고 내가 수도 없이 말 했지? 아마 그 말만 한 에너지를 모아도 지구를 구할걸? 그러니까 니가 안된다고 하는거야. 아 참, 그러고보니 너 이번에 성적도 개판으로 나왔지 아마? 너 뭐가 되려고 그러냐 도대체? 게다가 라면 맛은 이게 뭐냐? 계란 노른자는 왜 터트리고 지랄이야? 흰자만 따로 풀어야 될 거아냐. 라면 한 두번 끓여보냐? 너 귀찮다고 대충 끓였지? 그리고 찬밥은 어디다 갔다 팔아먹었냐? 아 썅, 국물은 왜 이렇게 짜? " 그럼 먹질 말던지. 그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지만 간신히 꾹꾹 눌러 참았지만 누님의 잔소리는 끊일 줄 모르고 이어졌고, 줄어가는 라면 국물 만큼이나 내 인내심도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제발 좀 빨리 먹고 방에 들어가서 처 주무세요' 를 몇번이나 속으로 되뇌이며 부글부글 끓는 속을 진정시키고 있을 때였다. "그러니까 니가 동정인거야, 병신아." 누님의 마지막 결정타가, 말이 내 얇디 얇은 인내심의 마지막 줄을 끊어버렸다. -탕!! "아 씨발!! 라면 하나에 그런 말이 왜 나오냐고!!! 그렇게 불만이면 니가 끓여 처 먹던지!"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세제 거품이 잔뜩 묻는 국자로 (그 와중에 난 설겆이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식탁을 힘껏 내리치며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누님은 국물을 마시다 말고 벙 찐 표정을 지었고, 이내 그 벙 했던 표정이 서서히 분노로 물들어갔다. 아차, 큰일났다. 속으로 혀를 차며 나는 앞치마를 휙 벗어 던져놓고는 재빨리 내 방으로 도망치듯 들어가서 문을 잠궈 버렸다. 방문 밖에서 '야 이 새끼야 너 지금 씨발이라고 했냐?! 나와!! 나오라고 이 새끼야!' 고 난동을 피워대는 누님을 애써 무시하며 엄청난 속도로 짐을 꾸렸다. 그리고 잠시 누님이 화장실을 간 틈을 이용, 방문을 박차고 필사의 '가출' 을 감행하였다. ...이게 약 6시간 전의 이야기. 이런 이유로 가출이라니. 스스로 생각해도 쪽팔려서 어디가서 하소연 할 수도 없었다. 친구집으로 도망가지 않은 것은 뻔히 누님에게 잡힐테니까, 라는 이유도 있지만 사실 쪽팔려서 라는 이유도 대단히 큰 비중을 차지했었다. 생각해 봐. 집에서 왜 나왔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야 해? '아 라면 먹는데 누나가 지는 안 끓여준다고 갈구잖아!? 그래서 끓여줬거든? 그런데 맛 없게 끓였다고 지랄하잖아!!!' 친구녀석 앞에서 울분을 토하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저절로 온 몸이 소름이 돋는다. 우와.. 유치한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아마 학교에 소문 다 나고 평생 놀림감이 될 걸? 하긴, 사실 이렇게 가출을 감행해서 산 속에 처박혀 덜덜 떨며 모기에게 피를 상납하고 있는 마당에 유치하다느니 체면이니 뭐니 따질 여유는 없지만. 그렇다고 지금 이 꼬라지를 하고 친구집에 가는 건 더욱 무리. 결국 나는 이 산속에 처박혀 있어야 할 운명이라는 거다. " 아아.. 씨발.. 씨발.. 울고싶다.." 코를 훌쩍이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이자, 툭, 하고 차가운 물방울이 모포 위로 떨어져 내렸다. 가슴이 철렁했다. 뭐지? 정말로 내가 울어버린건가? 이런 일로 울면 진짜 평생 지워지지 않을 인생의 흑역사로 남을 거라고! 당황한 나머지 두 손으로 얼굴을 더듬어 보았다. 하지만 왠걸? 눈 근처는 촉촉하긴 했지만 눈물을 흘린 흔적은 없었다. 그리고 그 때, 모포위로 또 다시 몇 방울의 차가운 물이 떨어져 내려왔다. 어이, 잠깐만. 이거 설마..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 바닥을 하늘로 향한 채 팔을 뻗었다. 그리고 손바닥에 떨어지는, 점점 굵어져 가는 차가운 물방울들.. "아악! 비오잖아 씨바아아아아아아알!" 나는 투덜거리며 머리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털어내었다. 물방울이 문 밖에서 쏟아지는 비 사이로 튕겨 나가는 걸 보면서, 도대체 몇 번째 쉬는 지 모를 한숨을 쉰다. 가지고 온 모포를 우의 대신으로 사용해서 옷 자체는 많이 젖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더 이상 이 모포를 덮는 건 힘들 것 같다. 그것은 그나마 모기에게서 지켜줄 방어막 하나가 사라졌다는 것과 동시에, 이 산속의 추위를 입고 있는 옷 하나로 견뎌야 한다는것을 의미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금 비를 피하고 있는 곳이 지붕에, 바람 막이용 벽 까지 충질히 있는, '집' 의 구조를 띄고 있다는 것 정도일까. 정확히 말 하자면 집의 모양새를 하고 있는것이 아니고.. 음.. 뭐라고 부르더라? 군사시설.. 벙커? 아마 그런 이름 이었을 것이다. 전부 시멘트로 만들어진 구조물에 작은 창 하나 뚫어 놓고 흙으로 덮어놔서, 멀리서 봐선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을 정도이다. 이런 구조물을, 그것도 어째서인지 자물쇠가 부서진 채 입구가 열려 있는 것을 찾아 냈을 땐, 정말이지 눈물이 왈칵 흘려버릴 뻔 했을 정도로 안도감이 들었다. 한가지 단점이라면, 빛이 새어들어 올 구멍이라고는 조그마한 구멍? ..창문인가? 가 전부인데, 그나마도 세로로 좁고 가로로 긴, 채광이라는 단어와는 담을 쌓은 형태를 하고 있어서 지독하게 어둡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누가 여기 같이 있다고 하더라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어둡다. 더욱이 얼굴에 가득 달라붙는 끈적한 느낌. 아마도 거미줄이 잔뜩 엉겨 붙었을 것이다. 아아, 정말이지 이런 상황만 아니라면 정말 들어오고 싶지 않은 장소야.. 다른건 모르겠지만 어쨋거나 조금이라도 밝으면 좋겟다는 생각을 하며 가방을 뒤져보니, 양초와 성냥 한 갑이 손에 잡혔다. 손에 잡히는대로 되는대로 쓸어남았는데, 너무나도 상황이 좋게도 이런게 나와주니 의아할 정도다. 습기를 잔뜩 먹어 잘 켜지지 않는 성냥을 조심스럽게 긋는다. 성냥팔이 소녀가 이런 기분이였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맥없이 웃어 본다. 몇개인가의 성냥을 덧 없이 날려버린 후에야 간신히 양초에 불을 밝힐 수 있었다. 작은 공간 안에 그림자가 춤을 추듯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밝진 않았지만 어둠에 익숙했던 나의 눈에는 조금 눈부실 정도였다. 그래서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고.. 하얀 원피스에. 얼굴이 안 보일 정도로 길게 늘어뜨린 머리. 창백한 피부. 마치 망가진 인형처럼 팔 다리를 늘어뜨린 채 벽에 기대 앉아 있는 '그것'을 보고 말았다. 가슴이 철렁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 얼어 붙어있는 찰나, '그것' 이 덜컥, 고개를 들어 올렸다. 순간, 머리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동시에 가슴 속 어딘가에서 '아아, 고양이 앞에서 쥐가 얼어붙는 게 이런 이유구나' 하고 왠지 모르게 납득해 버렸다. 흩어지는 머리카락 사이로 언뜻 보이는 검붉은 눈동자를 보는 순간 목구멍까지 비명이 치솟는다. 순간. "아빠!!!" 그것이 그렇게 외치며, 그것이 나에게 덮쳐들어왔다! "으으아아아아아아악!!" "아빠다! 아빠다!" "아아악!? 아악!? 아으으아아아악!? 으, 으허아아악?!" 나는 되도않는 비명을 지르며 이리저리 날뛰었고, '그것' 은 내 목에 대롱대롱 매달린채 연신 '아빠!' 를 외쳐댔다. 그 소란통에 바람 때문인지, 내 발에 채인 건지 켜 놓았던 촛불이 꺼져버렸다. 돌연히 찾아온 어둠과 침묵. 덕택인지, 방금 전 까지 공포에 질려있던 내 가슴도 거짓말처럼 침착함을 되찾았다. 벙커 밖으로 들려오는 나뭇잎을 쥐고 흔드는 비바람 소리와, 조금은 가쁜, 혼자만의 것이 아닌 숨소리. 그리고 아직도 목과 가슴께에 묵직하게 느껴지는 중량. 아마도 '그것' 은 아직도 내 몸에 달라 붙어 있을테지.하지만 따뜻하게 전해져 오는 체온과, 조금 느껴지는 떨림은 분명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니었다. 요컨데, 이건 '그것' 이라고 부를 수 없는, 살아있는 인간이겠지. 그것도 인형이라고 착각 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꼬마. 그렇다면 더욱 이대로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나는 손을 들어 목에 매달려있는 사람- (이겠지, 분명.) 을 더듬기 시작했다. 아, 아니. 이상한 의미가 아니라... 손에 감겨오는 긴 머리카락을 떨쳐내고 약간 손을 더 올려 어깨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잡았다. 그러자 흠칫 하고 몸을 떠는 것이 손바닥으로 전해져 온다. 에 또, 그러니까.. " 누구냐, 너...?" " .....!" 아니, 이게 아니라... 내 목소리를 들은 꼬마는 내 숨을 삼키며 내 목을 더욱 힘껏 감싸 안았다. 그 힘이 제법 강해 숨이 턱 막혀올 정도였다. 방금 전이라면 발광을 하며 날뛰었겠지만 제1법 냉정해 진 지금은 그렇지 않아. 나는 약간 캑캑 거리면서도 목소리를 쥐어 짜냈다. " 아니, 켁.. 일, 일단 이 손을 좀 놓지 않을래?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이니까.." 그러나 여전히 꼬마는 손을 놓지 않았고, 오히려 아까보다 더욱 힘을 주어 나에게 매달려왔다. 목에서 기묘하게 삐걱거리가 나는 소리가 날 정도로. 아, 으.. 의식이 멀어진다.. 나는 기브 업 선언을 하듯 소녀의 등을 탁탁 치며 켁켁 거렸다. 얼마간 그렇게 버둥거리고 있자니 목에 가해지던 압력이 조금 약해졌다. 그리고, 희미하게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싫어.. " " 컥, 커.. 어? 응? " "손, 놓으면 아빠 또 어디론가 가 버릴거잖아." 나지막히 코를 훌쩍이며 소녀는 그렇게 웅얼대듯 말했다. 그리고 그 말과는 달리 팔에 힘을 점점 풀며, 마치 기대오듯 나에게 달라붙었다. 덕택에 목이 부러질 뻔 한 상황은 모면했지만, 다른 의미로 내 머리속이 싸 하게 식어가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 투성이다. 애초에, 내가 있는 곳은 어디지? 그렇다. 동네 산이라고 치기엔 제법 높은 야산이다. 게다가 산 정상의 전망대가 눈으로 보일 정도로 높이 올라왔다. 더욱이, 여긴 등산로에서도 제법 떨어져 있는 곳이다. 군 시설물인 벙커가 있는 것만 봐도, 평범한 사람이 함부로 올 곳은 못 된다. 하물며 이런 어린 꼬마가? 등산을 하다가 조난을 당했다..? 이런 꼬마가? 게다가, 방금 들었던 말.. '아빠, 또 어디론가 가 버릴거잖아.' 아아, 그런건가.. 그렇게 된 거구나. 억측일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써는 그렇게밖에 생각 할 수 없나. 입 안에 비릿한 맛이 퍼지기 시작했다. 어느샌가 나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고 있던 입술에서 피가 터진 모양이다. 나는 손을 뻗어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가슴 속이 미칠 것 처럼 부글거리고 있지만, 내 가슴이 터질 것 같거나 어쨋거나 이 꼬마를 진정시키는 게 우선이겠지. " 아무대도 가지 않아. 난 여기 있을거야. 그러니까 손 좀 잠깐 놔 주지 않을래? 불을 키려고 하는거니까."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 해 보았지만 소녀는 말 없이 내 목을 휘감은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이, 이녀석.. 히, 힘이 왜 이렇게 쌘거야!? 목 부러져! 삐기기기긱 하는 묘한 소리가 목 근육에서 울리는게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여기서 난리를 피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시금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조용히 다시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기를 반복하길 얼마간. "..정말이야?" 꼬마의 불안한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고개에 힘을 주어 (힘이야 진작에 잔뜩 주고 있긴 했지만) 끄덕였다. "응, 정말로." "..하나님께 맹새하고?" "응, 하나님 부처님 공자님께 맹새코. 엄.." ..창 찍을 까, 라는 말은 황급히 입 속에 우겨넣는다. 아무래도 꼬마한테 엄x 찍고는 좀 심하겠지? 그 말을 듣고서야 간신히 꼬마의 팔이 목에서 천천히 풀려나갔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듯 내 옷깃을 꽉 움켜쥐고 있는게 느껴진다. 좋아, 지금은 이걸로 됐어. 나는 바닥을 손으로 더듬어 아까 쓰러트린 양초를 찾았다. 다행히 양초 심도, 성냥도 물에 젖지는 않아 금방 다시 불을 켤 수 있었다. 좁은 벙커안에, 다시 작고 은은한 양초빛이 타오르며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때서야 나.. 아니,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제대로 확일 할 수 있었다. 아까까지 내 목을 머리에서 분리 할 듯 조이고 있던 꼬마는 역시나 6~7살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자그마한 소녀였다. 길고 까만색의, 머리위에 조금 먼지가 쌓인데다 자세히 보니 이리저리 찢어지거나 더러워진 흰색 원피스. 도저히 등산용으로는 안 보이는 분홍색 꽃무늬 샌달. 평소라면 납치하고 싶.. 아니, 귀여움이 흘러넘칠 만큼 예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내 옷깃을 잡고 있는 여린 손을 너무나 꽉 쥔 채, 내 얼굴을 올려보며 애처로울 정도로 벌벌 떨고 있었다. "아, 아빠.." 불을 켰는데도 내가 자신의 아빠가 아니라는 걸 모르는 건가? 그렇게 쓴 웃음을 짓는 순간, 소녀의 말이 이어졌다. "얼굴이.. 왜 그래? " 응? 얼굴? 내 얼굴이 뭐가 어때서? 나는 당황해서 얼굴을 손으로 더듬어 보았다. 손 끝에 느껴지는 울퉁 불퉁한 감각. 도저히 얼굴의 피부를 만지는 느낌이 아니다. 게다가 끈적하게 느껴지는.. 이건, 피? 산에 오르다가 어디 긁힌건가? 소매로 얼굴을 슥 닦아보았자. 우와~ 싶을 정도로 피가 묻어 나온다. 거울이 없어서 볼 수는 없지만 역시나 대단한 꼴이 되어 있을 것 같다. 나는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말 했다. "..아, 모, 모기가 엄청 많더라고. " "괜찮아? 아빠, 호 해 줄까?" 소녀는 굉장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안절부절 못하며 말 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아아, 이런 동생 하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안타까운 한숨을 흘렸다. 그 와중에 소녀는 어디서 꺼냈는지 손수건으로 내 얼굴을 닦으면서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감사의 뜻을 담아 환하게 웃어 보였고, 소녀는 다소나마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때, "꾸르르르르르르륵..' 하는 커다란 소리가 울려퍼졌다. 무슨 소리지? 이런 산 꼭데기에 개구리라도 있는건가 싶어서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 문득 소녀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소녀는 얼굴이 빨개져서 황급히 자신의 배를 양 손으로 감추듯 움켜잡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번 커다랗게 '꾸르르르륵' 소리가 울려퍼졌다. "배고프니?" 조금 웃음섞인 내 질문에 소녀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고개를 푹 숙이며 '응' 이라고 작게 대답해주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서 나는 그만 '아아, 이런 정말 이런 동생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또 실없는 생각을 해 버리고 말았다. 다행히도 가방 안에는 상당히 많은 양의 과자와 라면, 초코바, 음료수 같은것이 들어있었다. 오오, 그 와중에 양초부터 시작해서 식량까지 챙겨온 나의 준비성에 경탄하라. 뭐, 비록 모기 퇴치나 방한 대책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 정도라도 훌륭하지! 아무래도 라면은 끓일 도구도 없었기에 적당히 부숴서 내가 우적거리면서 먹고, 음료수라던가 과자 종류는 소녀에게 내밀었다. 소녀는 매우 배가 고팠던 듯 허겁지겁 과자를 먹어대기 시작했다. 나는 멍하니 옆에서 생라면을 씹으면서 소녀가 켈록 거리면 음료수를 건낸다거나, 과자 봉투를 벗겨 주거나 하면서 소녀의 먹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묻고 싶은 것이 산더미처럼 있지만 아무래도 먹을 때 만큼은 행복하게 먹게 놔 두는것이 좋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아아, 그래, 제기랄.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리는 법이라고. 아앙? 개도 안 건드린다고오! 듣고있냐!? 허공에 주먹질을 하며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내 모습을 보고 소녀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황급히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손을 내 저었다. 휴우.. 이게 무슨 추태야.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녀는 그 많던 과자를 전부 먹어치우고 행복한 표정으로 늘어졌다.나는 조금 질린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거, 내가 먹어도 다 못먹고 남길 정도의 양 이었는데 그 작은 몸 어디에 저게 다 들어가는거지? 게다가 이 녀석이 늘어진 곳이 내 다리 사이라는것도 문제다. 하지만, 내치기도 뭣 하고 추운데 잘 됐다 싶기도 해서 나도 소녀를 끌어 안는다. 그러자 소녀가 기쁜듯 내 팔에 손을 올리고 발을 동동 구른다. 하아, 이런 동생이 있으면.. ..음, 그만하자. 벙커 밖에선 여전히 비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고 소녀가 비소리에 맞춰 발을 까닥까닥 흔들고 있는 것을 보며, 나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질문을 해야 하는지 다시 머리속으로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아빠, 우리 언제 집에 가?" 나는 흘끗 창 밖을 내다보았다. 바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하게 불어대고 있었고, 빗줄기도 처음 내리기 시작 할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굵었다. 생각 같아서는 지금 당장 내려가고 싶지만, 그건 너무 위험하겠지. 어두운 산에서는 길을 잃기도 쉽고, 자칫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목숨이 왔다갔다 할 걸? "으음.. 내일 아침? 일단 비가 멈추면 얼른 내려가자." 결국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그렇게 말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친김에 떠오른 질문을 소녀에게 던졌다. "그런데 너 이름이 뭐니?" "으응? 아빠, 나 희빈이잖아. 채희빈." 이상하다는 듯 갸웃거리는 소녀- 희빈이에게 나는 아, 핫핫핫 그랬던가- 하는 어설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고보니 이미 '나 니 아빠 아냐-' 라고 말 하기엔 너무 타이밍이 늦어버린 것 같기도 같네.. 음. 그럼 다음 질문. "희빈이는 여기 몇일 전 부터 있었어?" 희빈이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가락을 꼽아보며 대답했다. "웅.. 두밤? 아니 세밤째." 응? 세밤? 먹는 밤을 말 하는 건 아닐테고 아무래도 3일을 말 하는 거겠지. 어린 소녀가 이런 차갑고 축축한 곳에서 3일이나 있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릿해져 왔다. 나는 가빠지려는 숨을 진정시키며 질문을 이어나갔다. "응, 그랬구나. 그런데 우리가 왜 여기 왔더라? 머리가 나빠서 잊어버린거 같은데 희빈이는 똑똑하니까 기억하지?" 내 질문에 희빈이는 만세- 하듯 팔을 들어올리며 환한 미소와 함께 "응!" 이라고 대답했다. "아빠가 좋은데 갈 거랬어. 그런데 희빈이 혼자 두고 가기엔 걱정이니까 같이 가자고 그랬었어!" "...으윽..!" 내 입 속에서 빠드득, 하고 커다란 들려왔다. 잠시 놀란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던 희빈이는 '우와 아빠 대단해! 이빨 튼튼하네' 라며 기쁜듯 웃었다. 아, 안돼지 안돼.. 진정하지 않으면. 어쨋거나 그 멍청한 새끼가 어찌됐던 간에 희빈이는 다행히 여기 있으니까. 그래, 지금은 그걸로 됀 거다. 신이라는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도 나라는 녀석을 여기 보내주었으니 지금은 그것만을 감사하자..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있자니 희빈이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여기 하나도 재미 없어. 춥고 배고프기만 해." "....그, 그래, 그렇네.. 미안. 나중엔 정말 재밌는데 가자? " 나는 간신히 그렇게 대답하며 머리를 벽에 기대었다. 쿵, 쿵 거리며 심장이 격하게 뛰기 시작했다. 눈 앞이 뿌옇게 흐려지고 목에서 흐느낌이 흘러나오려는 걸 이를 악물고 참는다. 여기서 이 아이를 불안하게 할 수는 없었다. 나중에 얼마든지 울 수 있다. 나중에 얼마든지 화를 내며 소리칠 수 있다. 그러니까, 지금은 이 아이를 안심시키는 것만 생각하자. 지금의 난, 그것밖에 하지 못하니까. "...빠, 응? 듣고있어?" 정신을 차려보니 희빈이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날 올려보고 있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좋아, 아직 웃을 수 있어. "응, 미안. 잠깐 피곤해서 희빈이 말을 잘 못들었네. 다시 한번 말 해 줄래?" 희빈이는 불만스러운 듯 입술을 잔뜩 삐죽이다가 다시 발을 통통 구르며 말을 이었다. " 웅.. 둘째밤.. 전 부터 이상한 아저씨가 찾아왔다고 했어. "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예상외의 소리에 나는 정신이 멍 해 졌다. 나 말고 여기를 찾아 온 사람이 있었다는 소리인가? 누구? 못 보고 지나간건가? 아니 잠깐만, 둘째 밤 '부터' 라고 했으니 어잿밤도 찾아왔단 소리잖아. 그럼 어째서 희빈이를 그대로 내 버려 둔거지? 애초에 이런 산 속에 누가? 내가 이곳에 온 것도 정말 다시 없을 우연인데? 아, 설마 군인? 아니, 그럼 벙커 안에 있는 꼬마를 방치할 리가? 이런 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 응, 그 아저씨 되게 이상하게 생겼더라. 머리가 이~렇게 생겨서, 피가 막 질질나나고.." 희빈이는 바닥에서 나뭇가지를 집어들어 바닥에 아마도 사람 모양의 그림 (미안, 희빈아. 너 미술 엄청 못하는구나?) 을 그리며 신이나서 설명을 시작했다. 나는 가만히 그 그림을 보다가 점차 몸이 차갑게 식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아무리 서툰 그림이라도 사람의 형태는 알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목소리도 되게 이상해! 담배 엄청 피웠나 봐. 그리고, 그리구우, 어떻게 알았는지 희빈이 이름을 막 부르면서 열어달라고 하잖아? 근데 아빠가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말랬잖아, 그래서 문 안열어줬어. 잘 했지?" 희빈이는 칭찬해달라는 듯 웃으며 나에게 신나게 자랑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나는 온통 그 그림에 정신이 팔려서 제대로 된 대답을 해 주지 못했다. 희빈이가 그린 그림이라는 것이, 머리 반쪽이 움푹 꺼 진 채, 눈알을 대롱거리고 있는 어느 남자의 모습이었으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비바람은 점차 심해져만 갔다. 희빈이는 긴장이 풀린 탓인지, 배가 부른 탓인지 내 품에서 늘어져서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나는 쓴 웃음을 지었다. 나도 이렇게 생각없이 잠들 수 있고, 내일 아침이 되어 비가 그쳐서 산을 내려갈 수 있다면. 하지만 지금 나는 희빈이를 양 손으로 꽉 안은 채 잔뜩 핏발 선 눈으로 창 밖과 문을 번갈아 보며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제길, 핸드폰이라도 가지고 왔으면 친구라도, 누님이라도, 아니, 경찰이나 구조대라도 부를텐데. 아무리 주머니를 뒤져봐도 핸드폰은 들어있지 않다. 아무래도 누님에게 걸릴 까 봐 안들고 나온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은 나질 않는다. 어쨋거나 중요한 건 지금은 밖으로 연락한 수단이 전혀 없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이 내 초조함과 공포감을 점차 더 해 나갔다. 비 바람 소리에 섞여 저벅이는 발자국 소리 비슷한 것만 같다. 이따금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는, 바람 탓일까? 그렇지 않으면..? 나는 고개를 붕붕 저으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렇지 않으면 뭐가 어쨌단 말이야? 하지만 이내 내 시선은 다시 희빈이가 그린, 지금은 반쯤 지워진 그림에 못박히고 만다. 머리 반 쪽이 없는데다, 얼굴 아래까지 대롱대롱 눈알이 늘어진 남자를 그린, 그 서툰 어린 아이의 그림에. 이런 어두운 곳에서, 3일 간이나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다 보면 헛것을 볼 수 도 있다. 아니면 꿈을 꾼 것을 현실이라고 착각 할 수도 있다. 기가 허해지면 가위에 눌린다는 이야기도 흔히 있잖아? 애써 그렇게 자신을 납득 시켜본다. 하지만 생각은 다시 좋지 않은 쪽으로 흘러간다. 진짜일수도 있잖아? 애초에 희빈이가 그런걸로 거짓말을 할리도 없고. 꿈이 아닐수도 있잖아. 게다가 희빈이 이름을 부르면서.. 문을 열어달라고 했다고? 언젠가 들은 이야기로는, 귀신은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들어 올 수 없다고 했던가? 이런 저런 생각으로 몸을 떨고 있을 때, 어디선가 희미하게 우우우웅, 우우우우우우우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등골에 차가운 것이 스물거리며 기어가는 것 같은 느낌. 자세히 귀를 기울여보니 다시 한 번 우우우우웅, 하는 소리가 낮게 울린다. "바람 소리야.." 나는 몸을 움츠렸다. 저건 바람소리야. 바람이 나무를 통과하면서 나는 소리야. 여기는 온통 콘크리트에 텅텅 비어있으니까 소리가 울리니까 여기서 들리는 것 처럼 들리는거야. 그렇게 중얼거리며 몸을 당겨 희빈이를 좀 더 바싹 끌어 안았다. 그러자 희빈이는 조금 불편한 듯 투정을 부리듯 약간 몸부림쳤다. 하하.. 이 박정한 녀석. "..." 손목시계를 보니 시간은 1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10시간은 넘게 지나간 것 같은데, 희빈이를 만난 지 고작 3시간도 넘지 않았다. 잠들면, 편해질텐데. 잠들면.. 잠들면.. 하지만, 도저히 잘 수 있는 기분이 아니다.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여전히 작은 창 밖의 비바람 부는 풍경과, 문을 번갈아 가며 쏘아보고 있었다. "...." .... 그렇다면,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어떻게든 된다는 이야긴가. 예전에 읽었던 공포 소설에서도 흔히 있는 이야기다. 밖에서 누가 부르며 소리쳐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더니 밤새 시끄럽게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밖에 나가보니 문에 잔뜩 손톱자국이 나 있더라는 이야기.. 누구라도, 한 번쯤은 읽어봤을 흔한 이야기.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이야기랑은 다르다. 아니, 잠깐만. 왜 또 이런 쪽으로 생각이 흘러가는거야. '그런'게 있을리가 없잖아. 희빈이는 어리니까, 꿈을 꾼 걸 착각한 게 틀림없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밖에서 뭔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 온 것은. "...어! ...야! ..냐고! " 바람이 흔드는 나뭇가지 소리에 잘 들리지는 않지만 분명 무언가 들리고 있었다. 나는 등골이 쭈뼛서는 느낌을 받으며 귀를 기울여보았다. 잘못들었길, 제발 잘못 들었길 바라면서. " 여기 있는거.. 아! ...야, 나오라고! 임마!" 하지만 '목소리'는 더 크게 들려왔고, 나는 귀를 틀어막았다. 희빈이의 귀를. 아니 잠깐만, 이래서는 내가 계속 듣게 되잖아? "웅.. 아빠?" 내가 귀를 누른 힘이 너무 강했던 탓인가, 희빈이가 웅얼거리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사색이 되어 쉿, 쉿!! 하고 희빈에게 최대한 조용히 의사를 전달하려고 했지만, 귀가 내 손에 틀어막혀 있는 희빈이에게는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영문을 모른체 희빈이는 내 손을 치우려고 버둥거렸고, 나는 어쩔줄 몰라 당황해서 안절부절 하고 있을 때, 문득 생각이 미친것은 아직도 반쯤 남아 벙커 내부를 밝혀주고 있는 양초였다. 아차, 빛이.. ! 황급히 양초를 불어 끄려고 했지만, 입김이 닿기엔 양초는 너무 멀리 있었다. 아, 손을 뻗으면 되잖아! 하지만, 너무 늦었다. " 여기구나, 이 새끼야!! " 커다란 목소리가 문 밖에서 울려퍼졌다. 손으로 귀를 막는 정도로는 막을 수 없는, 커다랗고,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 희빈이는 잔뜩 겁먹을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 보았지만 나는 어떤 굳어버린 채 어떠한 반응도 보일 수 없었다. 아니, 그.. 그도 그럴게, 아니, 그럴리가 없겠지만..!? " 이 개새키야하아--앗!! " 쾅!! 하는 굉음과 함께 벙커의 입구에 벌컥 열렸다. 밖에서 불어온 거친 비 바람이 내부를 휩쓸어, 양초의 불을 너무나도 쉽게 불어 꺼 버렸다. 비바람과 함께 문 밖에는 바람에 길고 긴 머리를 흩날리고 있는 검은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손에는 푸르스름하게 도깨비 불처럼 빛이 흘러나오고 있는.. 엥? "꺄아아아아아!! 아빠, 아빠!!!" 희빈이가 비명을 울리며 내 품으로 파고 들었다. 하지만 나는 희빈이를 달래 줄 수도, 같이 공포에 빠져 들 수도 없었다. 나는 단지 홀린 것 처럼, 문 을 박차고 침입해온 것을 멍 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번쩍! 순간 내리치는 번개의 불빛. 그 찰나의 순간, 나는 어깨로 숨을 잔뜩 몰아쉬며 분노에 가득 찬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전율이라고도, 공포라고도 할 수 있는 감정에 사로잡혀 굳어 있는 나에게 그것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개새키가 전화 처 안 받는다고 못 찾을 줄 알았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 아이고.. 누, 누님..?!" 사례들린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하는 내 얼굴에 날아드는 푸르스름한 빛을 발하고 있는.. 핸드폰?! 이 머리를 강타하는 것을 느끼며, 나는 의식이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
ABOUT
카테고리
이전블로그
이글루링크
배일수의 리얼 디스커버리
황금빛 오아시스가 있는 신비한.. 페르페르부엉이, 여행을 떠나다. Invictus 矛盾人間 Crimsn's Lair 게으른 통나무 오두막집 궁극의 순수 일상 / 공간 Wayfaring Life 아기고양이 네코쨩의 왱알왱알 Memory Collector [Undead]ZOMBI의 꼬장생활 디스플레이용 안내책자 Congratulation !!! 최근 등록된 덧글
93년 겨울 그곳에서 위병근무 섰..
by 비호부대 at 10/22 잘죽어라- 오레!! by ZOMBI at 09/17 .. 뭐죠 긴글은 보지않습니다 by IP at 08/07 파스는 내성굴림 주사위를 던집.. by 검은사자비 at 07/28 SYSTEM : 파스이(가) 궁지에.. by 은조 at 07/23 음..두 사람의 비밀이 드뎌 드러.. by 누님 at 07/22 여어........흠..? 먹고.. by - _- at 07/22 아니 누님이 결코 모델이 아닙니.. by 티온 at 07/20 누님을 그렇게 모함해도 되는 거.. by 누님 at 07/20 ...아. 급분위기 반전.. 누님.. by 자유와바람 at 07/18 링크
http://acropolis.mireene.com http://omake.co.kr http://forg.co.kr http://ruliweb.dreamwiz.com/ http://cyworld.nate.com/dlqoeh http://iriet.ncity.net/ 최근 등록된 트랙백
작업 메이커.
by 게으른 통나무 오두막집 러프메이커 개사판 복음메이커. by Invictus Log, 사람이 배가 고프면 어떻.. by Invictus 글쟁이 문답 by Mell's CrossWise 짤방 - 인생 뭐 있나. by Invictus 예수천국 불신고홈 by Crimsn's Lair 트랙백 할수밖에 없잖냐! 우리동.. by Heaven or Hell 라푼젤 이야기. by Invictus 잠자기 싫은(또는안되는) 이.. by Invictus 어울리냐! 그럼 이건 어떠냐!! by Wayfaring Life 이글루 파인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