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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5월 15일
절망이다! 내가 무슨 소릴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숲의 노래 7월의 어느 무덥고 습한 날 밤. 거칠게 문풍지를 잡아 흔드는 바람 소리에 문득 잠에서 깨어났다. 검푸른빛으로 물든 방 안의 광도를 볼 때, 시간은 아직 이른 새벽일 터. 미닫이 식 창문을 통해 내다 본 바깥 풍경은 여전히 검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벌써 3일 째 쉼 없이 이어지고 있는 비. 한차례 이어서 바람이 분다. 지붕 위의 기왓장이 서로 부딪히며 버석거리는 기묘한 소리를 낸다. 한 박자 늦게 후두두두둑 하는, 몇 천개의 쌀알을 지붕에 퍼서 부은 듯한 소리가 이어진다. 퐁, 하는 소리와 함께 옆에 놓인 그릇으로 몇 번째일지 모를 물방울이 떨어져 파문을 일으킨다. 그것이 신호라도 되듯 나의 전, 후, 좌, 우를 둘러싸듯 몇 개씩 놓여 있는 그릇에 일제히 물방울이 추락한다. 퐁, 퐁 하는 소리가 마치 어릴 적 가지고 놀았던 악기 소리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문득 해 본다. 실로폰, 이라고 하는 이름이었던가. 흔히들 생각하듯 비가 오면 우울해 진다거나, 운치가 있다거. 또 어떤 사람은 기름진 것을 먹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고 말 하지만, 지금 내 머릿속엔 집 근처의 배수구 상태와 이 곳에 오면서 본 도로면의 균열 상태만이 맴돌고 있었다. 그 사람이라면 ‘야, 이 자식아. 요즘은 군인도 그런 고민 안 할 거다.’ 라고 면박을 주겠지만 나로썬 나름대로 진지하고도 현실적인 고민이다. 그것은 내가 지금 묵고 있는 이 집의 내구성에 관한 것이니까. 내가 지금 묵고 있는 이 집은 ‘풍경이 아름다운 양지바른 곳의 전통 한옥’ 이라고 소개를 받고 찾아 온 곳이다. 소개를 해 준 사람은, 얼마 전 공원에서의 일이 인연이 되어 만나게 된 임 명수라는 이름의 2살 위 터럭의 사람이다. 매사에 대충이고 게으른 사람이고, 직설적이면서도 꽤나 자주 횡설수설을 하곤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쓰지 않고, 할 말이 있으면 똑바로 하는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말에 상대가 상처를 받지는 않았을까 노심초사하는, 단점이 곧 장점인 그런 사람. 무엇보다도 사람을 사람 으로써 대해주는 그런 사람이다. - 내 생각에는 말이다. 얼마 전. 그는 공원 벤치에 다리를 길게 뻗은 채 하늘을 올려보며 지나가듯 그렇게 말 했다. 나는 내 앞에서 서성이는 비둘기에게 아침으로 먹다 남은 빵 부스러기 (나는 식빵 모서리를 잘 먹지 못한다.) 를 던져주고 있었다. -보기엔 넌 머리를 식히는 게 좋을 것 같다. 기왕이면 사람이 없는 곳에서 말이지. 내 고향집이 지금 비어있는데, 어때. 생각 있냐? 다짜고짜 생각 있냐? 라고 들어온 질문에 나는 무심결에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싱글싱글 웃는 느낌의 모습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빵 봉지에 손을 넣으며 말 했었다. - 쉬는 건 좋습니다만.. -그래? 그럼 마침 좋은 데가 있는데, 잠깐 기다려. ..시간이 될지 모르고,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하는 말은 목젖에서 그대로 삼켜야만 했다. 아무래도 이 사람이 한 말의 조각을 주워 맞춰 보면, ‘내 고향집이 좋은데, 마침 사람이 없다. 내가 보기엔 넌 좀 쉬어야 할 것 같은데 마침 딱 좋지 않냐?’ 는 말 인 듯 싶었다. 그렇게 지나간 말을 추리하고 자니 그는 다짜고짜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어이, 할머니. 아직 안 뒈지고 살아 계시네? 나야 뭐 건강하지. 어? 잘 아시는 양반이 왜 이러시나?’ 며 통화를 시작했다. 그렇게 5분 여 가량을 이야기 하더니, 전화를 탁, 닫으며 말 했다. - 좋아, 너 이번 달 10 일에 휴가 내라. 한 일주일쯤? 나는 황당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고, 그런 내 표정을 본 그는 의아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리곤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을 꺼냈다. - 왜, 아가씨라도 만나냐? 나는 두통이 일어나는 머리를 짓누르며 대답했다. - 그런거 아닙니다. 형님께선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희 회사 일 이라는 게 그렇게 ‘휴가를 내라’ 고 해서 그렇게 쉽게 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애초에 제가 맡고 있는 프로젝트도 아직 마무리가 안 됐고.. - 회의 시간에 빠져나와서 비둘기 점심이나 챙기는 사람이? - 회사에는 이미 양해를 구해 놨습니다. 잘 설명도 했구요. 나중에 착실히 회의 내용도 전해 받으니 그 쪽은 문제가 없습니다. - 비둘기 밥을 주고 싶어서 회의를 빠지겠다고 양해를 받았다고? 용자구나? 너. - ..그런게 아닌 거, 아시잖습니까.. 한숨에 가까운 내 대답에 그는 잠시 움찔했다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나는 현재, 안면실인증(prosopagnosia)과 흡사한 이상한 병에 시달리는 중이다. 안면실인증과 다른 점은, 상대방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고, 얼굴이 검은 복면을 두르기라도 한 것처럼 검게 보이거나, 얼굴 부위의 일부만 보인다는 것이다. 이 해괴하기 짝이 없는 증상을 겪은 이후로 나는 회사 회의 시간에 참석하지 않고 빠져나와 이렇게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곤 한다. 그래, 이 사람을 만나게 된 것도 이 병이 원인이었다. 그는 다시 몸을 벤치에 늘어져가 기대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어떻하냐? 이미 허락은 다 받아 둔 상태인데 이제 와서 안 간다고 하면 아깝잖아. -제 잘못이라는 것처럼 말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한 번 말이라도 해 보는 건 어때? 의외로 흔쾌히 승낙 할 지도 모르잖냐?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해 보지도 않고 그런 말 하는 거냐? 잠시간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비둘기에게 일정한 간격으로 먹이를 던져주고 있었고, 그는 여전히 벤치에 늘어 진 채 멍 하니 하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묘한 대치가 길어지는 것을 참지 못한 것은 결국 언제나처럼 내 쪽이었다. -이야기만이라면 해 보겠습니다. 나의 말에 자신의 무릎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짝, 하는 경쾌한 소리. -그래, 그래야지!! 그는 껄껄대며 호쾌하게 웃으며 연신 자신의 무릎을 내려쳤다. 그리고는, 꽤나 흥분한 어조로 자신의 고향집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봉.. 어쩌고 하는 산 근처에 있다느니, 지금은 댐 공사로 인해 다른 가옥은 수장이 됐다느니, 그래도 자신이 살던 집은 고지대라 저수지 윗편에 잘 있다느니, 마을은 없어졌지만 저수지가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일품이라느니. 그렇게 그는 한참이나 자신의 고향 집 이야기를 떠들어 댔다. 마치 내 휴가가 확정 된 일 인 마냥 떠들어대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쓴 웃음을 지었다. 이윽고, 회의가 끝날 시간이 되었고 나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해진 시간에 당연하다는 듯 만나, 언제나 그렇듯 정해진 시간에 당연하게 헤어진다. 그리고 그는 질리지도 않았는지 짓궂은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그래서, 내 얼굴이 어떻게 보이는 지는 아직도 안 알려줄 생각이냐? 두 번째로 그를 만났을 때도 그는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보이는지 내게 물은 적이 있다. 나는 말로 설명하기 불가능 한 것을 설명해야하는 난처한 상황에 빠졌고, 결국, 답변 아닌 답변 할 수밖에 없었다. -..재미있습니다. 지금처럼 말이다. 평소 그가 그런 내 답변을 ‘성의가 없다’ 며 불만스러워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로서는 그 이상 가는 해답을 내 놓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가 그렇게 크게 신경 쓰고 있지는 않으려니,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그 당시의 내 생각은 틀렸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내가 이렇게 골탕을 먹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휴가를 낸다. 즉, 일을 쉰다. 그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동안 받기만 하고 쓰진 않았던 유급 휴가란 녀석이, 상당히 많이 쌓여있었던 것이다. 일주일 이상의 장기간 휴가를 신청 할 때는 나라고 하더라도 쓴 소리를 들을 줄 알았지만, 나의 상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별반 다른 느낌도 지어보이지 않으며 휴가를 승인해 주었다. 최근의 회의 불참 문제도 있고 해서, 분명히 안 된다는 답변이 돌아 올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일에, 얼이 빠져 복도에 멍 하니 서 있을 때, 마침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같은 팀원 중 한 명이 내게 다가와 말 했다. - 어머, 강우씨, 휴가 가시는 거예요? 안 그래도 바쁜데 강우 씨 없으면 더 바빠지겠네요.. 뭐 이왕 가시는 거, 푹 쉬고 오세요! 부럽네요- 라는 말을 남기며 사라져가는 그녀의 등을 바라보며 그제 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없어도 회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잘 돌아간다는 것을 말이다. 그동안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일에만 매달려온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한편으론 조금 서운했지만... 뭐랄까, 무거웠던 어깨가 조금이나마 가벼워 진 느낌이었다. 회사의 문을 빠져나오자 낡아 빠진 승용차 한 대가 서 있었다. 그 차의 모습을 본 순간, 나는 내 앞날이 조금이나마 예상이 가기 시작했다. 어디 흙탕물에서 2~3바퀴 굴려 놓기라도 한 듯 차체 전체에 진흙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차에서 유일하게 깨끗한 곳이라곤 와이퍼가 훝고 지나간 앞 유리창 정도였다. 나는 그 창문 속에 비춰 보이는 익숙한 형체를 한 얼굴을 발견하곤 깊게 한숨을 내 쉬었다. 모르긴 몰라도, 마치 당연히 내가 휴가를 받는데 성공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겠지. 차가 이렇게 더러워 진 까닭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 그래서, 어딜 가실 생각입니까?
나는 그의 옆, 조수석 자리에 조심스럽게 타며 말했다. 그는 창밖으로 팔을 내밀어, 담뱃불을 탁 털어 끄며 짓궂은 느낌을 지어보이며 말 했다. - 풍경이 아름다운 양지바른 곳의 전통 한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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